330page


330page

乙巳國恥後에 有志之士 仗義蹶起하여 獻身殉國한 분도 있고 就道自靖하여 遯世高蹈한 분도 있으며 或은 海外에 流離轉倒하면서 光復의 날을 기다린 烈士가 있는가 하면 뜻을 育英에 두어 有爲한 靑年을 百歲 뒤에 期約한 篤志家도 있으니 그 特志行事에 있어서 淺深과 緩急은 다르다 할지언정 잃었던 民權을 다시 찾고 흐무러진 國基를 새롭게 하려는 哀情과 熱意는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先生의 姓은 韓이요 諱는 亮鎬이며 文聲과 小石 그 字와 號이니 淸州人이라 高麗太尉威襄公諱蘭의 後로 名德이 奕世하였고 近朝 參政大臣江石諱圭卨 贈貞敬夫人 密陽朴氏參判珪熙의 女는 即 先生의 考妣이니 大臣은 慷慨節義之人이라. 乙巳冬十月에 倭敵 伊藤이 來朝 所謂 保護의 條約을 强要하거늘 그 不當함을 糾彈하고 勒約을 最後까지 抗拒하였다. 先生은 高宗庚辰四月十四日에 生하니 長함에 이르러서는 通政大夫秘書院丞을 歷任하였으며 性行이 放達하고 秉彛所耀에 好善之心이 過人하더니 丙子四月十一日을 期하여 侍天敎所管 서울女子商業學校를 引受한 뒤로는 一百二十餘萬圓으로 弘濟洞三十八番地所在 萬餘坪校地를 買入 이에 敎室 講堂 寄宿舍를 新築하였고 이어 同年九月十九日에 校主로 就任 學校의 發展과 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