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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시작했다. 그러다 11월 17일에는 소개령이 내려졌고 많은 주민들이 연고지를 찾 아 광양, 화북 등지로 피난갔다. 소개지 생활은 힘들었다. 소개지에서 많은 주민 들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949년 봄부터 마을을 재건하며 성을 쌓기 시 작했다. 처음에는 마을 중심지에 조그맣게 성을 쌓아 생활했다. 그러다가 점차 사 태가 완화되어가자 성을 늘려쌓았고 그 흔적이 지금도 마을에 일부 남아 있다. 다. 현황 지금 가시나물 4·3성의 흔적은 성의 서쪽 끝 김병협의 집과 동문(東門) 인근에 20m 정도 남아 있다. 당시 원형은 많이 훼손됐고, 아랫폭 1.5m, 윗폭 1m, 높이 1.5m~2m 정도 남아 있다. 모두 개인주택과 밭의 경계로 이용되고 있다. 쌓았던 성의 일부가 경비가 해제된 이후 집을 짓거나 원래의 밭담, 산담으로 되돌려지면 서 성의 밑굽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김병협의 주택에는 마을 재건 당시 지어살 던 주택의 흙벽 한쪽 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2) 주둔지 ① 영평주둔소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첨단로 58 (영평동 2040번지) 일대 나. 개요 이곳에는 1949년 이후 화북지서 관할 경찰토벌대가 주둔했다. 당시 주둔소 둘 레에는 한쪽 길이 약 20m의 성담을 사각형으로 쌓고, 경찰 10명 이상이 주둔했 다. 이곳은 토벌대가 1948년과 1949년 초 대토벌작전을 벌인 후 잔비(殘匪)소탕 을 위해 요소요소에 세웠던 경찰주둔소 중 하나였다. 마을 주민 김병지(2003년 71세, 남)는, “마을이 재건된 후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주둔소 경찰을 도와 경비 를 서기도 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