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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함양,거창사건의 주범 부조상
● 최덕신 11사단장
● 오익경 대령 11사단 9연대장
● 김종원 대령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 한동석 소령 11사단 9연대 3대대장
산청.함양,거창사건의 주범들을 부조상으로 만들어 이들을 벽속에 가두어 두고, 후세들이 이들의 만행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며 반드시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 있음을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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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4인의 행적은 거창사건으로 인하여 1951년 2월 27일 대구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되고 동년 12월 16일 판정판시에서 최덕신은 보직 해임됐지만, 곧 복직하여 1군단장과 외무부장관, 주서독 대사 등을 지냈습니다. 그는 나중에 천도교의 교령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1976년 아내 류미영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갔다가 월북했습니다.
오익경 9연대장은 무기징역을 받은 후 1년 뒤 복직해 대령으로 예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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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익경 9연대장은 무기징역을 받은 후 1년 뒤 복직해 대령으로 예편되었습니다.
당시 계엄인사부장 김종원은 1951년 민간인 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었다가 흐지부치 처리된 뒤 경찰직으로 자리를 옮겨 치안국장(지금의 경찰청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장면 저격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배후로 드러나 구속되었으나 1961년 12월에 당뇨병으로 보석으로 풀려난 뒤 1964년에 사망하였습니다.
한동석 3대대장은 10년형을 선고받은 후 1년 뒤 특사로 풀려나 군에 복귀했다가 강릉 시장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