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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제주읍 17. 영평리 영평리는 제주읍 동부지역 중산간 마을로, 서쪽으로는 아라동, 동쪽으로는 월 평동, 북쪽으로는 황사평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62년 아라동에 편입되어 현재 는 아라1·2동, 월평동, 오등동과 함께 아라동에 속한 법정동이다. 영평리는 상동(가시나물)과 하동(알무드내)이 멀리 떨어져 있다. 상동과 하동은 그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4·3도 다르게 겪었다. 4·3 발발 직후인 4월 4일 상 동의 대청단원 오승조가 무장대에 살해되자 대청단원들은 하나 둘씩 제주읍내로 피신해갔다. 1 이들 중 상당수가 경찰에 투신해 토벌에 참여했다. 4·3이 진행되면 서 하동은 토벌대에 의한 피해가 커졌고, 상동은 경찰 및 대청단원 가족들에 대한 무장대의 위협과 습격이 이어지면서 두 마을이 서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동과 하동의 반목은 4·3 기간 내내 이어졌고, 결국 공동체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1948년 11월 17일, 토벌대는 영평리 상동과 하동을 초토화시켰다. 1949년 2 월 4일에는 동부8리 대토벌작전을 벌여 이웃 용강리와 봉개리 주민들을 대거 학 살했다. 그 후 마을 인근에서 피신생활을 하던 영평 주민들은 더욱 더 깊은 산중 1)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6권, 영평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