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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불을 끄느라 집합 장소에 가지 못한 이광익과 이정옥, 이진옥, 이원해 4명은 군인 들에게 붙잡혀 총살됐다. 당시 이원해는 현장에서 총상만 입고 살아났으나 며칠 후인 11월 29일 중문리 버리왓에서 총살됐다. (중문리–학살터–버리왓, 참조) 이후 회수리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29일: 토벌대의 자수독려에 전날 중문지서로 갔던 양두팔(21, 남)과 이원해(26, 남), 이태호(23, 남)가 이날 중문리 버리왓에서 총살 됨 (중문리–학살터–버리왓, 참조) 12월 4일: 임자옥(74, 여)은 아들이 피신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 로 토벌대에 총살됨 12월 13일: 무장대가 회수마을을 습격해 보초를 서던 양두칠(35, 남)을 살 해하고, 강승경(22, 남)에게 부상을 입힘. 이날 토벌대는 이원 옥(71, 남)·강주향(64, 여) 부부를 도피자 가족이라며 총살함 12월 17일: 토벌대는 중문면 관내에서 도피자 가족을 학살함. 토벌대는 회 수리를 급습해 이원옥·강주향 부부의 장사를 준비하던 이기하 의 가족과 고신길(58, 남)을 회수동 향사 앞밭에서 공개총살함 (회수리–학살터–향사 앞밭, 참조) 1949년 1월 4일: 전 구장 이기삼(48, 남)과 강창규(47, 남), 양두희(38, 남)가 중 문리 도살장 옛터에서 중문리 관내 주민 30여 명과 함께 토벌 대에 집단학살됨 (중문리–학살터–도살장 옛터, 참조) 회수마을 주민들은 1948년 12월 무장대가 마을을 습격하자 1949년 초 마을을 둘러 축성하기 시작했다. 그 후 회수리에는 토벌대인 신선부대 1개 소대가 한동 안 주둔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회수동 4·3희생자는 35명(남성 29명, 여성 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