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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제주읍 했다. “불 타버린 집을 의지해 움막을 짓고 잠을 자다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갑자 기 토벌대가 들이닥쳤지. 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어. 나는 무조건 산쪽으로 뛰었 어. 그런데 거기도 군인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무차별 난사하는 거야. 주로 부녀자들 이 많이 희생됐지. 나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산담 옆에 고꾸라졌는데 죽지는 않았어. 이날 소낭굴에서만 40명 이상이 죽었어. 형님은 칠오름 쪽으로 뛰다가 역시 매복한 군인 총에 죽었고.” 서회천 출신 허언(2003년 79세, 남)도, “1월 7일(음력) 대토벌 때 소낭굴 언덕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도망치는 주민들을 쏘았지”라고 증언했다. 다. 현황 이곳은 당시엔 억새밭이었으나 지금은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주민들이 학살 된 옴팡한 밭 남쪽에 소낭굴동산이 위치해 있다. ② 감낭우영 가. 소재지 제주시 회천동 나. 개요 1949년 1월 10일, 삼양 주둔 군경토벌대는 회천리 지역에서 본격적인 토벌작 전을 벌였다. 이것은 그즈음 벌어졌던 무장대의 삼양지서 습격에 대한 보복토벌 성격이 짙었다. 당시 회천 주민들은 마을이 초토화된 후 인근 벨진밧(와흘리 소 재)과 뒷곶(바늘오름 뒤)에 피신해 있다가 밤이 되면 잿더미가 된 마을로 내려와 굶주림을 해결하곤 하는 게 일상사였다. 이날의 토벌은 갑작스레 진행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미처 피신을 하지 못했다. 토벌대가 마을에 진입하자 주민들은 황급히 남쪽 벌판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감낭우영 비석 앞길에서 많은 주민이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당시 서회천에 거주했던 허언(2004년 80세, 남)은, “도망쳤다가 마을로 돌아와보니 아 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님과 어린 조카 2명이 감낭우영 비석 앞길에 쓰러져 있 었어. 가름 안에서도 죽었는데 15명은 죽었을 거야. 다 미처 피하지 못한 노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