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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중문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김종원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동생, 친족들을 모두 잃었다. 그는 당시의 충격 으로 극심한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앓아 19세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2001년 영남동 마을터(영남동 274번지)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졌다. 다. 잃어버린 마을 표석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 여기는 4·3의 와중인 1848년 11월 20일경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서귀포 시 영남동 영남 마을터이다. 이 마을에는 19세기 중반 무렵 생활이 어려웠던 제 주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기 시작한 이래 호수가 많 을 때는 50여호가 넘기도 했다. 주민들은 감자, 메밀, 콩, 산디(밭벼)를 주식으로 삼았고 목축을 하였으며 마을에는 서당이 있어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재수의 항쟁 등 여러 항쟁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했고, 1918년 법정사 항일독 립운동에 참여한 주민 6명이 일제에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 중 옥사한 김두삼(당 25세)은 독립 유공자로 추서되어 마을의 명예를 높여주고 있다. 4·3사건은 이 마을을 피해가지 않았다. 16가호의 주민 90여 명 중 피신하지 못 한 50여 명이 희생되는 불운을 맞았다. 주위로 눈을 돌려 화전갈이 흔적이 뚜렸 한 층계밭을 보라. 옛 우물터를 찾아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영남마을 주민들 의 아팠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라. 이곳에 밝은 햇살이 영원히 머물기를 바 라며 이 표석을 세운다. 2001년 4월 3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