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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협회의 발자취 301 돌이켜 보면, 설립한지 5년만에야 겨우 독립사무실 을 마련하고 기술강습회 사업만으로 협회의 명맥을 유 지하던 1970년대 초기에 회원이 「 전기공사업법 」 위반 이라는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피소사건에 휘말려 협회가 5년간 어려움을 겪었고, 1975년에는 한국전기 보안협회의 사업 확장을 위한 전기보안대행 범위의 확 대추진으로 우리협회 임원이 총사퇴하는 자중지란의 아픔도 맛보았으며, 1980년에는 정부의 지시로 대한전 기협회에 흡수・통합되어 10년간의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에 한번 있었고 문민정부 김영삼 정권에서 세 번 있었던 “ 전기 안전관리담당자 의무고용제도의 완화 ” 내지 “ 폐지정 책 ” 을 철회하게 하느라 숨 막히는 위기도 있었다. 1989년 자가용 전기공작물에 정기검사제도를 도입 하여 소위 자주보안체제를 국가감독체제로 바꾸고 한 국전기안전공사를 특수법인화 하는 내용을 골자로 「 전기사업법 」 의 개정이 추진될 때 전국에서 자생적으 로 조직된 전기기사협의회는 이 법안이 특정단체만을 위하여 입안되었다고 판단하여 전기주임기술자로부터 이어온 80년의 보안담당자 역사 이래 처음으로 정부정 책에 반대하는 여의도 궐기대회와 국회 상공자원위원 회에서 우리의 주장을 펴기도 하고 주머니돈 을 모아 일간신문에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다른 조직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활동을 하였었다. 1990년 전기기사협회가 재발족 되면서 과거에 당한 수많은 시련들이 모두 조직이 빈약했기 때문에 발생했 다고 생각한 회원들이 그간의 괴로움을 한풀이하듯 열 정을 다하여 협회업무에 협력함으로써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였고, 또한 권용득 회장의 선도아래 「 전력기술관 리법 」 을 국회 의원입법으로 추진할 때 전국의 회원이 적극 협력하였기에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법의 제정은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에 있어서 전 기 분야 기술사와 기사가 건축사보로 활동하고 수력 발전소와 양수발전소에서는 토목기술사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법령의 미비를 일시에 극복하여 전력기 술인의 자존심 회복과 업역을 창출하게 했고, 33년의 숙원인 협회 특수법인화로 조직의 극대화를 이룩하는 전력기술인 80년사에 획기적인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사단법인 대한전기기사협회는 간판과 함께 Chief Engineer의 약자인 마크를 역사의 뒤안길에 묻 으면서 한국전력기술인협회라는 거목으로 다시 태어 난 것이다. 본문2편 _ 3,4 239301(ok).indd 301 2014-01-24 오후 6:2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