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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감리교회와 3.10학생만세운동
면천지역은 1895년 서울 정동교회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은 유제(劉濟)가 면천군수로 재직하면서 오래 전부터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유제는 1895년(고종32) 6월18일부터 18 96년 10월14일까지 면천군수로 재직하면서 면천교회 설립에 기여했다. 당시 초기 교회에서는 신앙 운동과 민족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면천교회 초대 이상만 목사는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김구, 이동녕을 도와서 독립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고 전하며, 원세화 전도사는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인 원용은, 박창신, 이종원에게 이웃사랑 나라사랑을 가르치며 교회 등사기로 태극기를 만들 었다고 전한다. 이후 1919년 10월 원세화는 상해 임시정부 요원 정진에게 독립자금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각출하여 전달해 준 일이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어 큰 박해를 받으며 이리저리 피난 하였다. 면천 3.10 학생만세운동은 즉, 당시 면천 지역의 기독교와 면천감리교회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