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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바쳐 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고 이후 투쟁의 현장에 온 몸과 마 을을 바쳐 이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뛰었습니다. 97년에‘살아서 만나리라’를 발간했을 때 약 300분의 민족민주열사의 삶 과 죽음을 올렸습니다. 98년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었고, 역사적인 6∙15공 동선언이 발표되었으며, 다수의 진보세력이 국회에 입성하였습니다. 사회 가 이전보다는 민주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증보판을 내면서 97년 이후 산화해가신 약 70여분의 열사분들을 더 올렸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전보다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 리사회에는 온 몸을 바쳐 투쟁하는 현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투쟁의 깃 발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민주개혁을 위해, 통일의 영마루에 오 르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달려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금 지치기도 하고, 이제는 몸이 예전같지 않지만 우리 자식들에게 했던 약속, 동지의 영정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결심한 각오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열사를 잊지 않고 가슴에 뜨겁게 보듬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증보판을 내며 많은 고생을 하신 추모연대 식구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끝내살리라 |5| 열사를가슴에안고살아갑시다 발간사 안녕하십니까?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회장 강민조입니다. 1991년 4월 26일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서 저 를 기다린 것은 벌써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집의 외아들 경대였습니다. 처음 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장례투 쟁을 치루면서, 내 아들이 왜 꽃다운 나이에 우리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독재파쇼정권∙민생파탄정권∙비리정권∙반통일반민 주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간첩으로 조작하고,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던 것입니다. 억울함은 분노로, 투쟁의 결심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자식 을 잃은 저를 법정소란죄로 감옥에 보내고, 자식을 죽게 한 전경들을 제가 있던 맞은편 방에 수용하게 만드는 극악무도한 상황을 만들기까지 하였습 니다. |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강민조 |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