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page

29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기술자·전문직업인·지식인들이 서독으 로 넘어가자 동독의 경제력은 막대한 피 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동독은 1961년 8월 12일 밤, 동독 사람들이 서베를린 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장벽을 설치하였 다. 그 후, 철조망과 블럭으로 이루어진 장벽은 기관총 초소와 지뢰지역이 설치 된 5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대체 되었다가 1980년대에는 고압선과 방어진지들이 45㎞에 걸쳐 구축되어 베를린 시를 양분했다. 베를린 장벽은 오랜 기간 동·서 냉전의 상징물이었다. 약 5,000명의 동독인들 이 다양한 방법으로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가는 데 성공했으나, 다른 5,000여 명 은 동독 당국에 체포됐다. 191명의 동독인들은 장벽을 넘다가 발각되어 사살됐 다. 1989년 10월 동유럽의 민주화로 동독의 강경보수 지도부가 해체되면서 11 월 9일, 서독과의 국경선이 개방됐다. 이때 굳게 잠겨 있던 장벽도 활짝 열려 자 유로운 상호방문이 가능해졌다. 위 사진의 블럭은 베를린 장벽의 일부(높이 3.8m, 폭 0.2m)로, 2007년 베를린 시에서 4·3평화공원 조성을 기념하여 제주도에 기증한 것이다. 이 블록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통일과 평화의 상징으로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 우뚝 서있다. 8. 평화기념관 제주4·3평화공원 초입에 위치한 제주4·3평화기념관은 2008년 3월 개관했다. 4·3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4·3발발의 배경과 전개, 이후 진상규명 과정을 단 계별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평화기념관은 1층에 상설전시실을 마련하여 4·3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 록 꾸며졌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모두 6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각 전시관은, 도입 부분 제1관(역사의 동굴) → 4·3의 배경 제2관(흔들리는 섬) → 4·3 봉기 제3 관(바람타는 섬) → 학살 제4관(불타는 섬) → 후유증과 진상규명 역사 제5관(흐르 는 섬) → 화해와 상생 제6관(새로운 시작)으로 연출되며, 다랑쉬굴을 재연한 특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