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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남), 임재룡(54, 여), 장유천(46, 남) 등 12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학살했다. 이 들은 대부분 노약자였다. 당시 향사 서녘밭에는 조를 재배했었는데 토벌대는 조 를 베고 난 후 뾰족한 조크르가 남아 있는 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이날, 인근 여 러 마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학살이 이루진 것으로 보아 도피자 가족을 학살하 라는 특별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을 목격했던 상예리 오동식은, “10여 명 되는 사람들이 가마니끈으로 묶여 있었다. 이들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쏘았다”고 증언했다. 다. 현황 현재 이곳에는 유통회사(황금유통)가 들어서며 조립식 창고 건물이 세워져 있다. 3) 역사현장 - 상예국민학교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소보리당로 64-5 (상예동 3091-1번지) 일대 나. 개요 이곳은 예래국민학교가 1944년 상예동 향사(鄕舍)에서 상예공립초등학교로 개 교한 이후 1948년 10월 20일부터 1949년 2월 12일까지 정식 학교건물 5개 교 실에서 6개 학년, 7학급 350여 명이 4개월간 공부했던 학교터이다. 학교 부지는 3,000여 평에 이르렀고, 설립 초기 김흥수 초대 교장과 7명의 교사들이 학교를 이끌었다. 상예국교는 1949년 2월 11일, 무장대가 식량약탈을 위해 마을을 기습 하며 지른 불에 전소됐다. 이날 학교에서 보초를 서던 강경구(32, 남)가 무장대에 게 살해되기도 했다. 그 후 마을 주민들은 학교 위치를 옮겨 신축했다. 그러나 당시 신축부지의 땅주 인이 좀처럼 땅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토벌대의 서봉호 소대장이, “당신! 땅을 내놓으시오. 사정이 이런데 땅을 못 내어 놓겠소?” 협박했다. 그러자 땅주인이 벌 벌 떨며 내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이때 지은 학교가 지금의 예래초등학교이다.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