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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중문면 터에서 총살됨 (중문리–학살터–도살장 옛터, 참조) 12월 15일: 토벌대가 항일운동가 김경득의 가족 김승옥(63, 남), 허유인(65, 여), 오경생(39, 여), 문순희(33, 여)를 도피자 가족이라며 중문 리 버리왓으로 끌고가 총살함 (중문리–학살터–버리왓, 참조) 12월 17일: 토벌대가 강금아(40, 여)를 비롯한 주민 12명을 도피자 가족이 라며 상예리 향사 서녘밭에서 집단학살함 (아래 학살터–향사 서녘밭, 참조) 1949년 1월 4일: 중문지서 호출을 받고 갔던 김구범(29, 남), 오대휴(33, 남), 오 세화(20, 남)가 중문국민학교에 주둔 중이던 군인들에 의해 중 문리 도살장 옛터에서 집단학살됨. 이날 이곳에서는 중문리 관 내 주민 31명이 학살된 것으로 확인됨 (중문리–학살터–도살장 옛터, 참조) 1월 5일: 항일운동가 김경득(37, 남, 이명 김인평)이 상예리 공동목장에 서 경찰에 발각돼 중문리 신사터로 끌려가 총살됨 (중문리–학 살터–신사터, 참조) 2월 11일: 무장대가 상예리를 습격함. 무장대는 상예국교에서 보초를 서 던 강경구(32, 남)를 살해한 뒤 학교에 방화하고, 식량 약탈을 막던 진구태(56, 남)도 학살함 이후 큰 사건이 없는 듯했던 상예리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시작된 예비검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상예리에서는 예비검속으로 강문행(36, 남)을 비 롯해 김봉주(24, 남), 김형환(30, 남), 양국남(36, 남), 양규팔(25, 남), 오동규(22, 남), 오종흠(56, 남), 임상항(30, 남), 진승노(34, 남) 9명이 학살됐다. 현재 상예리에서 정부로부터 4·3희생자로 인정받은 주민은 88명(남성 71명, 여 성 1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