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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중문면 7. 상예리 상예리는 4·3 시기 1구와 2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상예1구는 성산동, 수전동, 본 동 같은 자연마을이 일주도로 남쪽에 하예리와 접해 있었지만, 2구는 북쪽 더데오 름 주변에 더데오름마을과 존자벵디, 덧남밧이 외따로 위치해 있었다. 2구에 속하 는 가가동은 4·3 시기에는 없었던 마을로 4·3이 끝난 뒤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상예리에서 첫 인명 희생은 이른 시기인 1947년 3월 17일에 발생했다. 이날 중 문지서 앞에는 지역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응원경찰이 무작정 체포한 주민들 의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군중을 향해 발포했고, 8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 생했다. 이것이 중문발포사건으로 이때 현장에 있던 상예리 강상준(19, 남)도 총 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월 23일 사망했다. 그 후 5·10선거 당일인 1948년 5월 10일, 무장대가 상예2구를 습격했다. 무장 대는 선거인명부를 강탈하고 우익인사들을 납치했다. 이날 김봉일(26, 남, 대청 단장)과 김경옥(39, 남), 오대호(46, 남, 독립촉성국민회 상예분회장) 3명이 무장 대에 끌려가 거린돌(거린도근) 동쪽 소나무 밭에서 살해됐다. 5월 27일에는 토벌 대가 상·하예리에 들이닥쳐 오만관(62, 남)·오택주(14, 남) 부자와 이명인(24, 남), 강대홍(26, 남, 하예리)을 총살했다. 이후에도 무장대와 토벌대 양측에 의한 주민 학살은 계속됐다. 특히 11월 중순께부터는 토벌대가 초토화작전을 벌여 그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