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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공립보통학교 터 (堤川公立普通學校址) 이곳은 제천동명초등학교의 전신인 제천공립보통학교가 있던 곳이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자 4월 16일 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사람들이 제천 장날인 이튿날에 독립 만세를 외칠 준비를 하였다. 이들은 태극기 천여 매를 만들어 놓았으나 일제 에 발각되어 장용근(張用根)등 12명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체포된 사람들이 이름은 다음과 같다. 구호달(具浩達), 장용근(張用根), 이규홍(李圭興), 이기택(李起澤), 최영옥(崔永玉), 엄해수(嚴海壽), 정성모(鄭聖模), 이우현(李禹鉉), 이상린(李相麟), 박춘희(朴春喜), 권팔용(權八龍), 김윤기(金允起), 이들은 같은 해 5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후 장용근은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장용근은 법정에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의 정신에 기초하여 조선 사람으로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처럼 제천의 독립 만세운동은 근대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젊은이들이 앞장서 이루어진 것이다. 1920년 제천공립보통학교에서 제천의 교육, 문화, 사회운동을 위해 설립된 제천청년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1926년 학교 학생 들이 순종 황제의 승하(昇遐)에 대한 일본인 교장의 무례한 언동과 고압적이고 비교육적인 처사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 수업을 거부 하는 항의행동인 동맹 휴학을 일으켰다.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적 성격을 띤 맹휴 투쟁(盟休闘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