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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5년 4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일제하 사회주의운동과 한국독립운동’ 족해방운동과 결합되어 수용된 한국의 사회주의 운 동은 계급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졌던 서구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과 뚜렷이 구별된다. 동시에 여타의 식민지, 반식민지 민족의 사회주의 운동과 공유하고 있었던 보편적 성격이기도 하였다. 한인사회당은 조직, 선전, 군사의 3개 집행부를 설 치하였다. 유동열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위한 한인무관학교 설치에 박차를 가했다. 하바롭스크시 볼셰비키당의 지원으로 각 지역에 지부를 설치하였 다. 노동회, 노병회 등과 같은 진보적인 외곽단체들 의 조직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또한 한 인사회뿐만 아니라 중국인 거주 지역을 대상으로 대 중사업을 펼쳤으며, 원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인 김 알렉산드라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주둔 일본 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반제·반전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출판활동은 한인사회당의 두드러진 활동이 었다. 김립과 이한영의 발기로 출판사 보문사(普文 社)를 설립하여 조선 역사와 지리 등 교과서를 간행 하였다. 또한 김립을 주필로 한인사회당 기관 지인 『자유종(고르고르)』을 발행하였다. 이를 위해 크라스 노쇼코프는 석판기계 1대와 인쇄비용 5천 루블과 1 천 루블 상당의 용지를 지원해 주었다. 우리말 번역 은 유동열, 김립이 담당했으며, 러시아어 번역은 오 와실리 등이 책임을 맡았다. 그렇지만 초기 한인사 회당은 대다수가 농민인 한인들과 충분한 연계를 갖 지 못하였다. 정치적 망명가들과 지식인들로 구성되 어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아우르지 못한 한계가 있 었다. 한인사회당의 활동 한인사회당은 1918년 6월 13일~24일까지 개최 된 제2회 특별전로한족대표자대회(特別全露韓族代 表者大會)에 참석하였다. 니콜리스크에서 개최된 이 대회는 1월의 한족중앙총회와 고려족중앙총회 양 측이 5개월 안에 헌장회의 개최 상호합의에 따른 것 이었다. 이 대회가 개최된 6월은 이미 시베리아 횡 1918년 러시아혁명 와중의 시베리아 내전에 개입하여 블라디보스톡 시가지를 행군하는  일본군  연해주 · 중국 등 국내외 한인 민족운동의 대 부로 존경을 받았던 성재(誠齋)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