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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제주읍 다. 현황 대기고등학교 입구 맞은편 길로 100m 정도 가면 남쪽으로 폭 1m, 높이 1~3m, 길이 30m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06년께 도시계획으로 없어져 이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용강으로 향하는 길목 버스정류장 명칭이 봉개남 문이다. 이 또한 당시의 흔적이다. 3) 은신처 ① 작은대나오름 일본군 진지동굴 가. 소재지 제주시 명림로 584 (봉개동 산 78-1번지) 일대 나. 개요 이 진지동굴은 봉개리민들이 5·10선거를 반대해 며칠 피신했던 곳이다. 이곳에 는 200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일본군 진지동굴이 있어 당시 주민들이 이 동굴 을 중심으로 은신했었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이 동굴은 봉개리가 소개되자 집을 잃은 주민들의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1949년 2월 4일, 동부8리 대토벌 당시 소낭굴에서 총상을 입고도 구사일생으 로 살아남았던 고윤섭(2003년 77세, 남)이, “못밧이란 데서 살아남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던 도중 큰아버지가 대나오름 동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갔지. 거긴 50여 명의 주민들이 피신하고 있었어. 우린 한 달쯤 후에 주민들 과 함께 귀순했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봉개 주민 고성수(2003년 78세, 남)도, “마을이 불 탄 이후 족은대나오름 뒤쪽 일본군 굴에서 2~3개월 피신하다 이듬해 봄 귀순했어. 먹는 것은 밤에 청년들이 불타버린 마을에 가서 타다 남은 곡식을 가져와서 해 먹었지. 먹을 것을 가지러 갔던 청년 임치헌(당시 25세)은 총상을 당 해 같이 갔던 청년들이 부축해 왔는데 다음 날 죽어버렸어. 일본군이 판 굴이 두 개 있었는데 한 곳에 30명씩 60명 쯤 피신해 살았어”라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