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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중문면 다. 색달리의 4·3 희생자를 볼 때 특이한 사항은 희생자 대부분이 중문으로 끌려 가 그곳에서 학살됐고, 마을 안에서 희생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1) 잃어버린 마을 - 천서동 가. 소재지 서귀포시 색달동 151-1번지 일대 나. 개요 천서동은 내 서쪽에 있다 하여 냇서왓으로 불렸다. 천서동은 냇새왓슬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이곳은 본동에서 북쪽으로 약 3.5㎞ 떨어져 있었고, 현재 마을 북 쪽으로 산록남로와 접해있다. 4·3 시기 약 45가구, 120여 명 정도의 주민이 화전 갈이와 목축을 하며 살았다. 천서동은 동동과 서동으로 나누어진 비교적 큰 자연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서동보다 동동에 많이 거주했다. 천서동은 1948년 11월 중순, 토벌대가 대낮에 마을을 방화하면서 대부분의 집 들이 불타 없어졌다. 이날 토벌대는 안덕면 서광리 쪽에서부터 마을을 불지르며 강정리와 염돈 방면으로 넘어가다 천서동을 방화했다. 주민들은 사전에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 주민들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토벌대를 보 고 미리 피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후 주민들은 색달리 본동으로 내려 가거나 인근 안덕면이나 한림면으로 소개했다. 일부는 근처의 곶자왈에 숨어지내 다 토벌대에 잡혀 희생되기도 했다. 허경화(2004년 85세, 남)의 증언에 따르면, 색달리는 마을 주변에 숨어지낼 자 연동굴 같은 은신처가 없어 뿔뿔이 흩어져 곶자왈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 12월께 색달리 본동에도 소개령이 내려지자 주민들은 대부분 중문으로 소 개했다. 이듬해 색달리 본동이 재건되고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천서동 주민들 일 부도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천서동으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본동에 머물 렀다. 그 후 1962년 정부 융자금으로 천서동 마을이 재건되면서 원래 마을터 아 래쪽에 14세대 정도가 돌아와 살았다. 그러나 이들도 생활고로 10여년 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