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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무장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토벌대에게 총살된 것이었다. 이후 11월 중순이 되면 천서동에 소개령이 내려진다. 토벌대가 소개령을 내리 며 천서동에 불을 질렀으나 희생된 주민은 없었다. 천서동 주민들은 색달리 본동 이나 인근 마을로 소개했다. 12월이 되면 색달리 본동에도 소개령이 내려진다. 이 때 토벌대가 마을에 방화는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중문리로 내려갔다. 색 달리에 처음으로 소개령이 내려진 11월 중순 이후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19일: 중문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던 김군석(26, 남)이 서청에 의해 중문리 대습이우영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살됨 (중문 리–학살터–대습이우영, 참조) 11월 25일: 김시권(31, 남)과 김희택(26, 남)이 토벌대에 의해 중문리 자운 당 골짜기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살됨 (중문리–학살 터–자운당 골짜기, 참조) 12월 5일: 고두회(47, 남)와 고잠(21, 남)이 토벌대에 의해 중문리 신사터 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살됨 (중문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2월 15일: 강기준(21, 남) 을 비롯한 4명이 중문리 버리왓에서 총살됨 (중 문리–학살터–버리왓, 참조) 12월 17일: 강유생(65, 여)을 비롯한 7명이 도피자 가족이라며 중문리 신 사터에서 학살됨 1949년 1월 18일: 토벌대가 김려식(25, 남)·김추월(20, 여, 김성규 동생) 부부를 총살함 색달리가 복구된 것은 1949년 4월께였다. 주민들은 본동에 성을 쌓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성이 작아 90여 세대가 입주하는데 그쳤다. 그 후 4·3 시기 5~6 호 정도가 있었던 군남동이 복구됐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색달리 4·3희생자는 61명(남성 47명, 여성 14명)이다. 그 러나 주민들은 연고가 없는 주민들까지 합하면 7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