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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제주읍 1948년 11월 20일께 마을은 초토화됐다. 마을이 불타자 주민들은 낮에는 인근 야산에 피했다가 밤이면 마을로 돌아와 불타버린 집 곁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토벌대에 발각돼 현장에서 총살되기도 했다. 1949년 2 월 4일 대토벌 당시에는 새벽에 기습을 받아 많은 주민들이 학살됐다. 봉개리는 1949년 봄, 소개마을 중 도내에서 처음으로 재건한 마을로 유명하다. 당시 화북, 삼양 등지로 소개갔다 재건계획에 따라 고향에 돌아온 주민들은 섯동네를 중심으 로 축성한 후 성안에 함바집을 짓고 살았다. 그 후 동동네도 점차 재건이 되었지 만 본동과 떨어진 이곳은 끝내 재건되지 못하고 잃어버린 마을로 변했다. 다. 현황 지금도 당시의 올레와 마을 진입로가 남아 있고, 집담이 옛 모습 그대로 쌓여있 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터는 과수원으로 변해 옛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라. 찾아가는 길 봉개Lee마트 남쪽으로 나있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00m 쯤 올라가면 대나 무 숲이 군데군데 있는 과수원이 나온다. 이곳이 당시 마을터이다. 2) 4·3성 <봉개리 장성동 4·3성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봉개동 2450-3번지 일대 나. 개요 1948년 11월 20일 봉개리가 군경토벌대에 초토화된 이후, 삼양, 화북 등지로 소개갔던 봉개리민들은 1949년 봄 당국의 재건명령에 따라 섯동네를 에워싸는 축성을 한 후 성안에 함바집을 짓고 살았다. 당시 이 재건마을에는 봉개뿐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