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page

275 중문면 6. 색달리 색달동은 동쪽으로 중문천과 색달천을 경계로 중문동과 접하고, 서쪽은 예래천 을 경계로 상예동과 접한다. 북쪽으로는 안덕면 상천리와 광평리, 애월읍 봉성리· 광령리와 경계하고 있다. 4·3 시기 색달리는 본동과 자연마을인 천서동, 감수동 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색달리 주민 중 첫 희생자는 강보찬(45, 남)이었다. 그는 중문면 청년회장과 색 달리 구장을 했으며, 당시에는 색달리 대동청년단 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1948년 5월 24일 집을 습격한 무장대에게 납치돼 중문리 녹하지오름에서 생매 장 당해 사망했다. 이외에 김두화(27, 남)가 6월 29일 집을 습격한 무장대에게 끌 려 간 뒤 녹하지오름 뒷벵디에서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색달리 마을 안에서 일어난 첫 사건은 1948년 10월 30일에 있었다. 이날 새벽 몰방애에 가던 강경윤(26, 남)이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혀 총살됐다. 이때부 터 토벌대에 의한 주민 학살이 계속됐다. 11월 초순에는 경찰이 김성섭(21, 남)을 찾아와 계모 조춘심과 이복형제 강기준(21, 남)의 행방을 추궁했다. 그러나 그가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자 경찰은 색달리 주민들을 머구낭동산에 집합시킨 뒤 그를 공개총살했다. 11월 11일에는 중문지서로 연행됐던 김정수(68, 남)가 중문 리 신사터에서 총살됐다. (중문리–학살터–신사터, 참조) 김정수는 아들 김성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