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page
272page
이천 의병 전승비(利川義兵戰績碑). 우리 민족은 강인한 정신과 사물의 도리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지혜로 영토를 지키면서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왔습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간교한 왜구(倭寇)가 이 땅을 침략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고, 강제로 단발령을 시행하니 민족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에 김하락, 김태원, 구연영, 조성학, 신용희 등의 열사(烈士)들이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키 니 그 수가 2,000여 명에 달하였습니다. 1896년 1월 17일 일본군이 이천으로 침략해 오는 것을 이곳 넓고개(廣峴)에서 전멸시켰는데, 이것이 윤미의병(乙未義)의 첫 전승(戰勝)이었습니다. 그해 6개월에 걸쳐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과 격렬한 포격전을 벌었는데, 서울(漢城)에 주둔한 일본군의 모든 부대가 지원하는 침략에 맞서 여러 전투를 계속하여 영남지역에 이르기까지 장렬히 싸웠으니, 이천 의병은 막강하였습니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올사의병(乙巳義兵)과 정미의병(丁未義兵)으로 이어져 이천은 지방 의병의 근원지로서 항일운동(抗日運動)이 계속이어졌으니, 서울 남부지방에서 독립투쟁사를 빛낸 최대의 중심지였습니다.
김하락과 조성학은 영남에서, 김태원과 신용회는 호남에서 각각 전사하였고, 구연영은 이천에서 장렬히 순국하였습니다. 이에 이원회 회원 일동은 이천 의병 열사들의 고귀한 충절을 귀감으로 삼고, 그 충혼을 길이 추모하고자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습니다. -1988년 무진년(戊辰年) 6월 정암(靜巖) 김동옥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