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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선생 생가터(李無影先生 生家터)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
소설가, 호는 무영, 본관은 경주, 본명은 갑용, 아명은 용구다.
의병란으로 피난 왔던 이곳에서 1908 이덕녀씨와 인씨 사이의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3년 중원군 신니면 용원리로 이사하였다. 소학교를 중퇴하고 휘문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문학의 꿈을 피우다가 중퇴하고 1925년 일본 세이조 중학교에서 수학 1927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에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고, 조선문학을 창간 하였다.
동아일보기자를 그만두고 1939년 군포에서 직접 농업에 종사하면서 '제1과 1장' '흙의 노예' 등을 발표하면서부터 농촌소설을 썼다.
그의 농촌소설에 대한 집념은 1954년에 발표한 장편 '농민'을 절정으로 하고 있으며 1943년 장편 '청기와집'으로 '조선예술상'을 수상하였고 1956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1960년 뇌일혈로 사망,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에 이무영 문학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