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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3.10학생독립만세운동의 중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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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姜善弼, 1898-1976)은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출신이다. 그는 1916년 제4회로 면천공립 보통학교에서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3.1운동이 발발한 1919년에는 3학년이었다. 당시 경성고보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하고 학생들을 파고다 공원에 동원하였는데, 강선 필은 부친에게서 받은 학비 일부를 독립선언서 인쇄에 필요한 비용 조달을 위해 주었고, 결국 일제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부친과 함께 당진으로 귀향한 그는 서울에서 불리던 '독립의 노래'를 원용은에게 전달해 학생만세운동을 지도하였다. 터져구나 터져구나 大韓獨立性(聲)/ 十年을 참고 참아 인제 터졌네 / 피도 朝鮮, 뼈도 朝鮮, 이 피 이 뼈는 / 살아 朝鮮, 죽어 朝鮮, 朝鮮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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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은(元容殷, 1902-1951)은 당시 17세로 면천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다. 그는 형 원용하(1890-1963)와 함께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하였고, 3.1운동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당진으 로 귀향한 그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옷감을 구입하여 태극기와 현수막을 제작 하였고, 면천 동문 밖 송림에 깃대를 숨겨두었다. 행사 당일 그는 전교생을 동문 밖 저수지 옆골짜기에 집결시키고 만세운동을 설명하여 행진에 돌입하였다. 이후 학교 교직원의 만류로 결국 해산되었지만 귀갓길 몽산과 아미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하였다. 이후 그는 면천 주재소에 자진 출두하여 당진경찰서, 공주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하였다. 원용은은 학교에서 졸업을 불과 보름 남기고 퇴학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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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朴昌信, 1900-1950)은 합덕면 신석리 상흑마을에 살았다. 그는 원용은에게 독립만세 운동을 권유받고 인접한 당진공립보통학교와 덕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연결해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밀서에는 만일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그는 '인면수심'이라고 격려와 함께 충동하는 문구를 보내어 설득하고자 하였다.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그는 원용은과 함께 주재소에 자진출두하여 함께 고초를 겪었고, 마찬가지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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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李鍾元, 1899-1985)은 순성면 본리에 살았다. 그는 4학년 급장으로서 만세시위의 맨 앞에서 행진을 주도하였다. 그와 함께 박성은은 4학년 부급장으로 만세 시위대의 맨 뒤에서 시위대의 이탈을 막았다. 이들의 참여와 주도로 면천공립보통학교의 전교생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