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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제주읍 14. 봉개리 봉개리는 제주시 동부 중산간지역의 중심마을로 주민들은 밭농사와 목축을 하 며 생활했다. 봉개리는 봉아오름과 명도암, 새미, 가는새, 웃무드내의 다섯 개 마 을로 흩어져살다가, 1914년 이 지역이 제주면으로 승격되면서 봉아오름과 명도 암을 합쳐 봉개리, 새미와 가는새를 회천리, 웃무드내를 용강리로 개편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명도암과 대나오름에 일본군이 주둔해 있었고, 4·3 때는 주민들이 일 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을 은신처로 이용하기도 했다. 4·3 시기 봉개리에는 우초낭가름(진목동)을 비롯해 큰동네(대동), 섯동네, 명도 암, 도고내가름 등 크고 작은 자연마을이 있었다. 또 동산가름과 도롱쿨 같은 10 호 미만의 마을도 있었으나, 이 마을들은 그 후 재건되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봉개동은 1962년 1월 1일, 행정구역 정비강화에 따른 임시조치로 봉개동 이 되었고, 현재 봉개동과 회천동, 용강동의 3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봉개리는 해방 직후 제주도남로당위원장을 지낸 김영관을 비롯한 봉개 7인당 파 1 가 중심이 돼 자치행정을 실시하고 교육사업을 벌이며 주민과 함께 생활하고 1) 해방 직후 봉개동에서 주도적으로 좌익활동을 했던 일곱 사람을 일컬어 주민들이 붙인 말. 7인당파 는 김영관, 김응배, 이순진, 현갑생, 강응추, 임태종, 김영순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