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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다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학살사건이다. 1948년 11월 15일: 김상길(26, 남)과 원두현(26, 남)은 중문지서 경찰에 연행된 후 마을향사 앞 연못에서 학살됨 11월 19일: 김장국(23, 남)과 오성욱(25, 남), 이두성(27, 남), 이승택(32, 남), 임평문(30, 남) 5명은 토벌대에 아무런 이유없이 연행된 후 중문리 대습이우영에서 서청에 집단총살됨 (중문리-학살터-대 습이우영, 참조) 11월 24일: 김형칠(30, 남)은 산으로 피신했다 이날 일시적으로 상예마을 로 내려왔는데 주민들에게 무장대로 오인 받고 폭행당해 죽음 12월 13일: 이원옥(71, 남)·강주향(64, 여) 부부는 도피자 가족 혐의로 자 택 근처인 현재 중문고등학교 동쪽 밭에서 총살됨 12월 15일: 강문호(19, 남)를 비롯한 6명은 토벌대에 끌려 서귀포로 간 뒤 정방폭포 부근에서 집단총살됨 (서귀리-학살터-정방폭포와 소 남머리 일대, 참조) 12월 15일: 강이선(24, 남)은 중문국민학교 교사로 전날 토벌대에 끌려 서 귀포경찰서로 갔다 하효리 효돈국민학교 옆 큰내 서녁밧에서 총살됨 (중문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2월 15일: 임선(66, 여)은 도피자 가족으로 중문지서 경찰에게 아들의 행 방을 추궁당하다 중문리 신사터에서 학살됨 12월 17일: 강항팔(61, 남)·오두만(67, 여) 부부를 비럿한 10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마을 진밧 (아래 학살터-진밧, 참조)에서 경찰에 공개총살됨 1949년 1월 4일: 김달쇠(63, 남)를 비롯한 5명은 중문지서 경찰에 연행된 후 중 문리 천제연 폭포 입구 소나무 밭(옛 중문도살장터)에서 2연대 군인들에게 집단총살당함 (중문리-학살터-도살장 옛터, 참조) 1950년 7월 미상: 강공호(23, 남)는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됐다 학살됨 대포리에서 현재까지 4·3희생자로 인정받은 주민은 모두 45명(남 39명, 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