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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판윤에서 명원다헌까지 : 강석 한규설과 명원 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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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을 끝까지 반대한 책임 정치가 '한규설'
한규설(1848~1930) 대감의 본관은 청주이며, 호는 '강석(江石)'으로 '강에 있는 돌처럼 단단하고 굳세다'는 뜻을 지닌다. 그는 1876년 무과에 급제한 뒤, 1889년과 1900년 두 차례 대한제국 의정부 참정대신을 지냈다. 이 무렵이 장교동 고택을 지은 시기다.
을사조약에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된 그는 일제강점기에 이상재(1850~1927) 등과 함께 조선 교육회를 설립 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장교동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을 한성 지도를 통해 살펴보면 당시 한성판윤 시절의 출근길을 짐작할 수 있다. 집을 나서서 골목을 벗어나면 청계천변을 따라 경복궁 방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지금의 KT 광화문지사가 호조 자리이고 미국대사관 부근이 그의 관아인 한성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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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다도의 선구자 '김미희'
김미희(1920~1981) 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명원(茗園)'으로 '차의 뜰'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녀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온 전통 차와 다례, 차 산업 등을 부흥시킨 현대 한국 다도의 선구자이다. 1950년대부터 전통 차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급하기 시작했으며 1967년 명원다회를 결성하고 1974년에는 국내 최초의 현대 다실인 녹야재를 우이동에 설립하였다. 또 한 1979년 차 문화 학술대회를, 1980년에는 전통 다례 발표를 국내 최초로 개최하였다. 그리고 1981년 국민대학교에 명원다헌을 건립하고 국내 4년제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다도 강좌를 개설하였다. 김미희 선생은 한국전통 다도의 복원과 보급에 끼친 높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차의 날' 기념식 에서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