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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5년 4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일제하 사회주의운동과 한국독립운동’ 성하였다. 양측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10월 혁명 에 따른 급격한 정치적, 사회경세사적 변화로 인하여 한인사회의 다양한 입장 들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한인사회 는 입적여부, 토지 소유의 유무, 이주의 동기와 시기, 사상의 차이 등의 갈등들 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인사회는 10 월 혁명으로 집권한 볼셰비키 세력(혁명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반볼셰비키 세력 (반혁명세력)으로 분화되었다. 특히 시 베리아 내전의 시작으로 이러한 분화 및 대립 관계는 더욱 심화되어 갔다. 김 알렉산드라, 한인 최초로 사회주의적 민족운동 전개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한 민족운동이 시작된 것은 10월 혁명 이후이다. 구 체적으로는 김알렉산드라(金Alexandra)가 하바롭 스크로 활동 근거지를 옮긴 후였다. 이때까지 국 내는 물론 노령(露領) 한인사회에서도 사회주의 적 민족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알렉산드라는 1914년부터 우랄산맥 서쪽 페름지방의 벌목장에 서 통역으로 일하였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한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에 게 존경 받는 지도자였다. ‘원동 소비에트’ 외무위 원과 하바롭스크시 당 서기의 중책을 맡은 그녀는 반혁명세력과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러시아혁명 을 지켜내야 하는 볼셰비키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했던 한인혁명가들 사이에 한인사회당이 창당된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철도역사(연합뉴스 제 공). 맞은편에 16세기 이곳을 처음 발견해 이곳 지명의 유래가 된 러 시아 탐험가 하바로프의 동상이 서 있다. 한인사회당의 주요 구성원들. 왼쪽부터 박진순, 박애, 이한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