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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전북임실에서 태어난 동지는 ’67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68년 한영섬유에 입 사 노동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분신’소식은 한영섬 유 노동자 일부에게 알려져 있었다. ’70년 12월 6일 영등포노동회관에서 열린 ‘노사문제 세미나’2주 후 12월 20일 전국섬유노동조합 서울의류지부가 결성되 었고 한영에서 3명이 참여하였다. 이후 3명을 중심으로 한영섬유 노동조합결성 을 준비하였다. 당시 (주)한영섬유는 서울시에서 할당한 수출 초과달성으로 많은 이윤을 남겼 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수건1장이 고작이었다. ’70년 12월 28일 점심시간 식당에 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기 위하여 공 장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위장폐업으로 노동자 200명을 해고시키는 만행 을 저질렀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으나 회사측은 부당 노동행위를 강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노동조합을 탈퇴시키려 하였다. 이에 노조가 쟁의발생신고를 하자 회사는 돈으로 매수 된 사람들을 동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노조간부 들이 해고된 상태에서 동지는 강요에 의해 탈퇴한 조합원을 재가입시키는 활동 을 진행시키고 있었고, 사측은 동지를 말 안듣는 노동자로 분류하고 주시하였다. 매수된 구사대는 3월 18일 오후 3시경 일과시간 중 만취상태로 동지와 동료를 폭 행했으며, 노조 일을 적극적으로 하던 동지를 불러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였고 이에 불응하자 드라이버로 머리를 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병원에 이송된 동지 의 상황에 대하여 제대로 의사에게 알려주지 않고, 사건을 숨김으로서 제때 치료 를 받지 못하고 동지는 5월 17일 운명하였다. “사망한 김진수는 가난한 가정의 독자로서 한영섬유에서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회사측의전위대에의해숨진것입니다. 사회단체는죽음의원인이무엇이며, 누가죽였는가하 는것을알아보았습니다. 회사측은동료들끼리싸웠다고주장하며, 도의적인책임으로50만원 의위자료를준다는것이며, 노동조합분회장및한영섬유동료들과가해자는공장장의지령에 의하여노동조합을파괴하는활동중에서일어난것이라고주장하고있습니다. 우리는한근로 자의죽음을어떻게해야합니까? 이러한인권의유린에대해우리는눈감고있어야합니까?” - 영등포도시산업선교연합(1971.6.15일자) - 김진수 (당시22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49년 7월 6일 전북 임실군 장사면 출생 1967년 12월 안양고 2년 중퇴 1968년 8월 15일 (주)한영섬유 입사 1970년 12월 31일 공장에서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폐업한다는 말에 자진사퇴 1971년 1월 4일 한영섬유에 재입사 1971년 3월 18일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구사대에게 피습 당해 사경을 헤맴 1971년 5월 17일 운명 끝내살리라 |51| |5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