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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2) 4·3성 <도련1구 4·3성> 가. 소재지 제주시 도련1길 8 (도련1동 1611번지) 나 개요 도련1구는 당시 공회당과 수운교 건물이 있던 곳이 그 부근에서 제일 높다고 하 여 그곳을 중심으로 성담을 쌓았다. 1949년 1월께 축성은 시작됐다. 마을 사람들 이 전부 동원돼 주변에 있는 산담이고, 울담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가져다 쌓았다.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고 하여 성 주변에 있는 나무까지도 전부 잘랐다. 유성문 (1925년생, 남)은, “나무 속에 곱거나(숨거나) 담이 높아도 장애물이 되거든. 그래 산도 멘짝, 바다도 멘짝, 전부 밋밋허게 만들었어. 여기서 보면 삼양까지 쫙 보이 게 헌 거야. 그때 삼양 사람들 걷는 것도 봐졌어. ‘도치카’ 허민 성을 말하거든. 우 린 도치카 쌓고, 총뿌리 대여놓곡 경계서멍 싸웠어. 여기만 쌓은 게 아니야. 도련 2구, 봉개, 용강, 회천… 저 중산간 마을 전부 다 성을 쌓았지. 경찰관들이 주둔허 멍 경비해주고, 보초 사주고. 또 배급도 주고. 깡냉이, 우유가루를 자꾸 줬어. 성 쌓아가지고 살다가 해방되니까(4·3이 끝나니까)”라고 증언했다. 도련리에 주둔한 경찰은 서북청년회 출신 응원대였다. 이들을 주민들은 청바지 부대라 불렀다. 당시 성담에는 동서남북에 총구를 만들어서 밖을 겨누고 있었다. 서청경찰은 보초서는 주민들을 혹독하게 감시했다. 주민 고중휴(1937년생, 남) 가, “그때 도련이 재건될 적에 보민, 밑에 간 사름은 거의 대부분 올라왔어. 며칠 동안에 성을 쌓으라고 했지. 우린 아마 한 달 동안을 출퇴근했어. 아침에 점심 싸 가지고 와서 돌을 쌓고 쌓고 하다가 내려가고. 그런 다음은 성이 완성돼가니까 집 을 지으라고 해서 나무영 띠풀이영 끊어다가 집 짓고 해서 올라 온 거지. 1949년 1월달부터 시작해서 2월 말쯤? 3월… 돼서 올라왔을 거야. 참 힘들었어”라며 당 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