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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중문면 발발한 제주4·3사건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제주 도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하원마을에서는 군경에 의해, 무장대에 의해 61명이 살해되었고, 무장대의 방화 로 104동의 가옥이 소실되었다. 입산한 무장대는 1명뿐이었지만 습격은 잦았다. 4·3이 일어나던 1948년 11월 10일(음) 1차 습격 시, 거리왓 쌍몰고래 육박전은 처 절했다. 그때 무장대 1명이 생포되어 성난 주민들에 의해 참살된 뒤 5회나 더 습격 을 받았다. 습격 뒷날이면 경찰조사로 주민의 고통이 막심했다. 식량을 빼앗긴 사 람은 제공자로, 밉보인 사람은 내통자로 낙인 찍혀 끌려가면 돌아올 줄을 몰았다. 군경과 무장대의 틈에 끼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 참상을 어찌 말로 다하랴. 시대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가신님들, 사회의 지도자가 될만한 자질을 타고났 다고 기뻐했는데, 그게 오히려 허무하게 가는 길이었으니 원통하기 그지없구나. 얼굴 마주 보며 오순도순 살아가던 이웃들을 원수로 만든 시대, 그 험한 세월은 흐르고 이제는 용서와 화해와 상생의 계절을 만나, 막혔던 가슴을 활짝 열어 마음 껏 울고 웃게 되었다. 얼마나 흐뭇한가. 하원마을은 예부터 양반촌, 또는 문촌이라 일컬었다. 서당이 많아 이웃 마을 학 동들까지 찾아와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면 시회가 열려 원근의 문사들이 모여들었다. 예절 바르고 인심 좋은 고장으로 부러 움을 산 마을이다. 그 아름다운 고향 땅 정갈한 이 동산에 구천을 떠돌던 님들을 초혼하여 제향을 올리고 한을 풀었으니, 하원마을엔 세세생생에 기쁨이 넘치고 웃음소리 끊이지 않겠구나. 생전의 말씀은 귀에 쟁쟁하고, 온화한 얼굴은 눈에 삼삼하여, 부르면 대답하고 달려올 듯싶어라. 그때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던 아들딸들이 제단 앞 에 엎드리고, 얼굴 모르는 손자들이며, 정을 나누던 형제자매 이웃들이 머리 숙여 함께 명복을 비니 천지가 감동하는도다. 아, 님들은 이제 서천 꽃밭에서 길이 영면하겠구나. 2008년 4월 3일 은석 조명철 짓고 / 청운 김택춘 감수 / 평산 고병숙 쓰고 제주4·3희생자 하원유족회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