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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제주읍 은 2개 학급이었다. 교실이 모자라 1~3학년은 2부제 수업을 했다.” 삼양교에서 펴낸 『학교향토지』(1987)는 4·3으로 인한 피해상황을, “1949년 1 월 3일 하오 7시경, 무장대 1개 분대 병력이 내습하여 먼저 삼양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 2명을 살해한 후 학교를 전소시켰다. 이날 교장 송문평과 송상봉 급사를 비롯, 학도대 3인 등 주민 40여 명이 희생됐다. 무장대는 7개 교실과 부속건물 일 체를 전소시켰고, 학교 주변 가옥 40여 채도 불태운 후 도주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삼양교에는 교장 송문평(표선 출신), 교사 안태석(삼양 출신), 한창섭(삼 양 출신), 김종은, 김정희, 이성후, 고덕찬, 임계숙, 송정순, 송경애, 김순자, 홍수 방, 황○○, 급사 송상봉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 학교 교정에서 토벌대에게 총살 된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은 장시용의 증언이다. “그때 죽은 사람은 고영준(27, 삼양3동)과 장씨(장세정, 23)이다. 고영준은 1948년 11월 6일 토벌대가 주민들을 삼양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시키고, 무장대 지원 혐의로 청년들을 끌고나가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나다가 총살됐다. 장세정은 1948년 11 삼양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