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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세운동의 준비와 연합운동 추진
원용은은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와 현수막을 제작 하는 등 만세시위를 위한 제반 준비를 진행하였고, 박창신은 인접한 당진공립보통학교와 덕산공립보통 학교 학생들에게 밀서를 보내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연합적인 만세운동으로 크기와 힘을 극대화하려 하였으나 그 뜻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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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세운동의 전개
1919년 3월 10일, 면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은 면천 동문 밖 저수지를 지나 '산을 넘어 은욱한 골작 이'에 모두 집결하였다. 원용은은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이 서울에서 확인한 독립만세운동의 실상을 설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준비해 온 태극기와 현수막을 내보이면서 송림 속에 숨겨 두었던 깃대를 꺼내 태극기와 '대한 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10척 긴 폭의 현수막을 ▶ 달고 만세시위 행진에 돌입하였다.
만세시위대의 맨 앞에서 이종원이 행진을 주도하 였고, 박성은은 맨 뒤에서 시위대의 이탈을 막았다. 원용은과 박창신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깃대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시위대가 호응 하면서 행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