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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중문면 同行 現地에서 探聞한 바 當時 對馬島 新聞記者 阿比留繁藏 氏의 證言인 즉 韓國 6·25 戰爭 때 4~5名씩 사슬에 손이 묶인 屍身이 相當數 引揚 火葬하여 太平寺 境 內에 納骨하였으며 몇 具의 屍身은 西山寺 뒷山에 埋葬하였다는데 지금은 竹林이 우거져 그 埋立場所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屍身들이 濟州 바다에서 漂流하여 왔음이 立證할 수 있는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分明 여름철 潮流여서 濟州바다에 서 흘러간 屍身임이 틀림없을 것으로 心證이 되나 立證하지 못하여 遺骸를 모셔 오지 못하고 있다. 이 屍身이 濟州人 遺骸임을 立證할 수 있는 資料收集에 努力할 것이다. 입은 있어도 말 못하던 歲月 50年이 지난 2001年 7月 24日 (陰曆 6月 15 日) 西歸浦 休養林 거린사슴에서 三面의 遺族들은 처음으로 合同慰靈祭를 奉行하 였다. 이를 契機로 그해 8月에 三面遺族會를 結成(會長 李邦春) 每年 合同慰靈祭를 奉行하기로 하고 2002年 3月부터 濟州道, 西歸浦市, 南濟州郡의 支援으로 西歸浦 市 河源洞 762番地의 1의 528坪 敷地를 買入 祭壇造成事業을 始作 2004年에 完 工하였다. 三面 遺族들은 처음 끌려가 虐殺當한 날로 推定되는 陰曆 6月 15日을 追慕의 날로 하여 每年 이 날에 慰靈祭를 奉行한다. 慰靈碑에 虐殺當한 80位 銜字 가 새겨져 있다. 그 數가 200位가 넘을 것으로 推測되나 遺族들을 찾지 못하여 모 두를 記錄하지 못한 恨을 禁할 수 없다. 西紀 2004年 12月 2日 三面遺族會 ② 위령비 <전면> 三面 冤魂 慰靈碑 <후면> 犧牲된 冤魂의 銜字를 碑에 새김에 있어 그 位數는 相當할 것으로 傳하여지고 있으나 五十餘 年 歲月이 흐르는 동안 遺族들이 故鄕을 떠나 여러 곳에 散在하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