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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수장시킨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4·3연구소가 2007년 8월부터 제주국 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 끝 지점에서 4·3유해발굴을 실시한 결과 123구의 유 해를 발굴했는데 이들은 DNA감식 결과 애초 제주시지역 희생자로 알려진 사실 과는 달리 모두 서귀포지역 희생자, 즉 삼면희생자들로 밝혀졌다. 다. 비문 ① 내력비 <전면> 三面冤魂祭壇의 來歷 <후면> 西紀 1950年 6月 25日 北韓軍의 南侵으로 우리나라는 戰爭터가 되었다. 이때 政府(大統領 李承晩)에서는 豫備檢束令을 發令하여 무고한 良民을 拘束 虐殺하였 다. 濟州에서도 各 警察署別로 무고한 良民을 拘禁하였고, 이 拘禁者들을 裁判 判 決없이 共産主義者로 取扱 濟州 駐屯 海兵隊에 引繼 虐殺하였다. 公權力에 의한 良 民虐殺事件이다. 濟州道에는 濟州, 西歸, 慕瑟浦, 城山浦 等 4個所에 警察署가 있었 고, 西歸浦 警察署의 管轄은 南濟州郡 中文面, 西歸面, 南元面 등 3改 面이었다. 西 歸浦 警察署에서도 이 三改 面의 무고한 良民 二百餘 名을 當時 西歸面 西歸里 857 番地 五日市場 內 옛 절간고구마 倉庫에 拘禁하였다가 그해 7月 29日(陰曆 6月 15 日)과 8月 10日(陰曆 6月 27日) 두 차례 濟州 駐屯 海兵隊에 引繼 바다에서 虐殺 水葬한 것으로 推測된다. 警察에서 豫備檢束者 名簿를 公開하지 아니하여 그 數를 알 수 없다. 本會 會長團(會長 李邦春)이 當時 慕瑟浦 駐屯 海兵隊 3大隊長이었던 김윤근(京畿道 구리시 거주)을 찾아가 虐殺 日字와 그 場所 및 數를 알려 줄 것을 要求하였으나 自己는 모르는 일이라는 答辯이고 또한 海兵 本隊 情報課長이었던 고광수는 이 虐殺事件에 直接 關與한 것으로 心證이 가나 亦是 모른다는 것이다. 當時 많은 屍身이 日本國 對馬島에 漂流하여 갔다는 所聞이 있어 2003年 10月 1 日 濟州道 4·3遺族會에서 對馬島 現地에서 慰靈祭 奉行 時 本會 顧問 金己錫 氏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