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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이날, 무장대의 2차 습격은 지난 1차 습격 당시 생포됐던 무장 대원 1명이 마을 민보단원에게 살해당한 데 대한 보복습격이었 음. 하원리 제1초소를 기습해 들어온 무장대는 북방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주민 5명을 살해함 1월 26일: 강병생(57, 남)이 무장대의 하원마을 3차 습격으로 사망함. 그 는 민보단원으로 활동하다 이날 자택을 습격한 무장대에 토벌 대 협조자라는 이유로 총살됨. 그는 현재 국가유공자(애국단)로 등록돼 있음 3월 17일: 고춘화(19, 여)는 이날 무장대의 하원마을 4차 습격사건으로 사망함. 그는 여자 한청단원으로 야간 마을성곽 경비 중 초소가 전소되면서 불에 타 사망함 1950년 7월 25일: 봄, 섯동네와 통물 동쪽 동네를 중심으로 2차 축성작업이 진행 되고, 본동으로 소개했던 섯동네 주민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면서 마을 재건이 시작됨. 이 시기 한라산의 잔존 무장대는 60 여 명 정도로 이들은 가급적 교전을 피하고 무기를 감추면서 연 고지에서 부모형제들로부터 생필품을 보급받아 연명하고 있었 음. 때문에 소규모의 교전은 있었지만 무장대의 습격사건은 발 생하지 않았음. 그러던 중 한국전쟁 발발 1개월 후인 이날, 하 원리에 대대적인 무장대의 5차 습격사건이 발생함. 이 습격으 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마을에서는 민가 99동이 불타는 대대 적인 피해를 입음 1951년 5월 1일: 김정순(25, 여)은 남편 사망 후 친정인 하원리로 돌아와 친정부 모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었음. 그는 1949년 4월께부터 여자한청단 단장을 맡아 성담 연락임무를 수행하는 등 마을지 키기 활동에 열심이었음. 그러던 중 이날, 무장대의 하원마을 6 차 습격으로 오독돌 북면에서 무장대에 납치된 후 행방불명됨 하원리에서 현재까지 4·3희생자로 인정받은 주민은 모두 53명(남 51명, 여 2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