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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선(姜華善)/당시 15세/ 대통령표창[1918.11.17] [펑남 대동군 출생, 당시주소 여수시 남면 우학리 /1904.3.21~1979.10.16] 독립운동가 강병담 목사의 딸,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출생함. 3세 때 아버지를 따라 여수로 이주하여 남면 우학리에서 성장함.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1,000여명의 군중과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음. 출옥 후에도 적극적으로 국민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했으며 해방 후에는 대한부인회 전남지부장으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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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건립한 공적비 비문은 잘보이는데 이 공적비는 더이상 판독이 불가능하다. 몇년후 다시 탐방하여 뒷쪽에 추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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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군의 3.1운동은 3월 10일 오후 2시경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이 「독립선언서」 배포를 시작으로 부동교 아래 작은 장터에서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전개되었다. 이날의 만세운동에는 일반 시민과 기독교인은 물론 광주농업학교·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우편국 앞으로 행진을 시작하자 일제는 기마헌병대·소방대·재향군인회까지 동원하여 탄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 100여 명이 체포되었다. 강화선은 수피아여학교 학생으로 교사 진신애·박애순의 지휘 아래 2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19년 4월 30일 광주형무소에서 출감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