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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중문면 된 후 중문리 자운당 골짜기에서 학살됨 11월 23일: 마을에 들어온 중문지서 서청순경 10~15명이 주민들을 모두 향사에 집결시킨 뒤 무장대 협조자를 찾아내려함. 청장년들을 조사했으나 관련자를 찾지 못하자 아무 혐의도 없는 강득록 (31, 남)을 불러내 아내와 마을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총살 함. 주민들은 이 사건을 하원마을 안에서 벌어진 첫 번째 주민 학살 사건이라 기억하고 있음 11월 28일: 강창보(25, 남)를 비롯한 5명이 중문리 자운당 골짜기에서 다 른 마을주민 1명과 함께 중문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서청특 별중대에 학살됨 12월 2일: 강인규(21, 남)를 비롯한 6명이 중문리 자운당 골짜기 1차 집단 학살사건으로 살해됨. 지난 11월 23일 중문지서 서청순경에게 강득록이 총살당했었는데 이날 마을경비를 담당했던 20~30대 청장년 10여 명도 중문지서로 연행됐다 12월 2일과 4일 자운 당 골짜기에서 2차에 걸쳐 총살됨 12월 4일: 임성규(34, 남)를 비롯한 7명이 자운당 골짜기에서 2차 집단학 살됨 12월 10일: 강상언(34, 남)을 비롯한 5명이 무장대의 하원마을 1차 습격사 건으로 살해됨. 이날 하원리 외곽 제3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주 민 2명이 살해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허해생은 무장대 기습 소 식에 오독돌로 올라가 방어하다 부상을 입은 후 사망했으며, 김 근중과 강찬규는 무장대에 납치돼 산으로 끌려간 뒤 살해된 후 암매장됨 12월 13일: 김규남(28, 남)은 대정면사무소 서기로 1948년 말께 대정면사 무소가 무장대에 전소돼 의심을 받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도 피생활을 함. 그는 이날 토벌대에 발각된 뒤 중문리 신사터로 끌려가 다른 주민들과 함께 총살됨 1949년 1월 16일: 강유손(44, 남)을 비롯한 5명이 무장대의 하원마을 2차 습격사 건으로 사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