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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삼양검문소에서 신촌 방면으로 50m쯤 지난 원당봉 방향의 도로변 미개간지이 다. 주변은 과수원으로 개간돼 있다. 4) 주둔지 <삼양지서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삼양2동 2139-9번지 나. 개요 삼양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찰관 주재소로 설치됐다. 해방 이후 국립 경찰의 창립과 동시에 제주경찰서 삼양지서로 개칭됐다. 4·3 시기 삼양지서는 삼양과 도련, 봉개, 용강, 회천을 담당하던 토벌근거지였 다. 지서에는 7명의 직원이 근무했고, 여러 차례의 무장대 습격을 받았다. 1949 년 1월 3일 습격 때는 보초 서던 주민 장규태, 장여완, 장용택 등 민보단원 10여 명이 학살됐고, 학도호국단 사무실에서도 김용배, 김두추 등 6명이 살해됐다. 삼양지서 경찰들은 4·3 초기부터 주민들에게 악행을 일삼았다. 이들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당시의 신문보도 2 가 남아 있다. 삼양리 출신 진인수가 고문치사됐다는 사건을 다룬 기사이다. 【제주 발 조선】 열 세살밖에 안 되는 소년을 소요민의 일원이라 하여 고문치사케 한 전율할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주읍 삼양리에 거주하는 진인수(13) 군은 산중 소요민으 로 지목되어 지난 7일 그 동리에 있는 경찰지서로 붙들려가서 지서장 민용기(閔用基) 경사와 순경 2명에게 난타를 당하여 그 이튿날(8일) 새벽 1시경에 드디어 절명하였다 2) 『서울신문』·『朝鮮日報』·『朝鮮中央日報』·『漢城日報』(1948년 9월 15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