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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파견대장과 보조원 두 사람이 파견돼 근무했다. 4·3 시기 하원마을의 주요 특징 중 한 가지는 입산자나 도피자가 없었다는 사실 이다. 이와 관련해 인명피해는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끌려가 희생 됐던 것으로 하원마을 총 희생자 55명 중 여성 희생자가 1명이고, 노인과 유아 희 생자 또한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하원마을은 무장대의 기습을 여섯 차례나 받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 해 주민 15명이 희생됐다. 이들 중 13명은 보초를 서던 민보단원들이었다. 다음 은 이 여섯 차례 습격 당시 희생된 주민들이다. 1차(1948. 12. 10.): 강상언(34, 남)과 김기칠(30, 남), 허해생(37, 남) 3명이 사망했 고, 강상민(34, 남)은 부상, 강찬규(21, 남)와 김근중(22, 남) 등 6명은 납 치 후 살해됨 2차(1949. 1. 6.): 강유손(44, 남)을 비롯한 김구현(39, 남), 김달수(43, 남), 김병두 (50, 남), 송흥옥(18, 남) 5명이 살해됨 3차(1949. 1. 26.): 김병생(57, 남)은 살해되고 김일흥(남)은 부상을 입음 4차(1949. 3. 17.): 고춘화(19, 여)는 여성한청단원으로 화상 후 사망함 5차(1950. 7. 25.): 한국전쟁 직후인 이날, 무장대는 하원마을을 대대적으로 공격해 민가 99동을 불태움. 인명피해는 없었음 6차(1951. 5. 1.): 김정순(25, 여)은 여자한청단장으로 납치됨 다음은 하원마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이다. 1948년 9월: 원만암의 승려였던 양홍기(21, 남)가 절을 기습한 토벌대에 학 살됨. 토벌대는 절을 모두 불태우고 그를 원만암 윗쪽 하원목장 근처 계곡으로 끌고가 살해함 (아래 역사현장-원만사, 참조) 11월 19일: 강홍규(40, 남)는 이날 중문지서 경찰에 연행된 후 중문 관내 중문, 대포, 상예, 색달, 하원 주민 16명과 함께 중문리 대습이 우영에서 학살됨 (중문리-학살터-대습이우영, 참조) 11월 22일: 지종구(31, 남)는 대청단원으로 훈련을 받다 중문지서에 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