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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양리에는 무장대의 습격이 잦아졌고, 이에 토벌대는 주민들에 대한 보복학살로 맞섰다. 넷째, 1949년 1월 3일 새벽, 무장대는 삼양리를 습격해 삼양국민학교를 전소 시키고, 교장 송문평(1948년 5·10선거 당시 삼양리 선거관리위원장 역임)과 직 원 송상봉을 학살했다. 다섯째, 서청 출신 정용철 경위가 삼양지서 주임으로 근무하며 벌인 처참한 학 살극은 악명이 높다. 그는 ‘하루에 한 명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내뱉었다고 주민들은 기억한다. 악귀 같던 정용철이 벌인 1949년 2월 24일 사건은 정부의 4·3진상조사 보고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당시 고봉수 대한청년단 분대장의 증언이다. 1 “하루는 정기보고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놓고 있더군요. 그리 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정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 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넣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삼양경찰은 고문 직후 이 젊은 여자를 지서 옆밭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태워죽 였다. 이 여인은 김진옥(21)으로 그때 남편 김태생은 산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여섯째,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 실시 후 삼양리에는 봉개리, 회천리, 도련리 등 인근 중산간 지역주민들이 많이 소개와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시 로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토벌대에 희생됐다. 또한 이와 반대로 무장대가 습격하 면서 중산간에서 내려온 주민들을 다시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경우도 많아 주민 희생은 더욱 커졌다. 일곱째, 삼양리 주민들은 주로 삼양지서 앞밭, 붉은도, 함덕리 모래밭, 화북리 고우니모루, 삼양국민학교, 도련리, 회천리 등지에서 토벌대 또는 무장대에 희생 된 것으로 조사됐다. 여덟째, 원당봉에 있던 원당사나 불탑사도 소개 명령이 내려져 스님들은 불상 1)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년, 4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