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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첫 번째는 성을 쌓기 이전으로 존골로 침입했다. 1948년 겨울, 윤기봉은 월평 리 방위대장으로 존골로 순찰가다 습격을 받아 12군데나 죽창에 찔렸으나 살아 났다. 두 번째는 1949년 가을 성을 쌓고 난 후의 일로 1953년 1월께였다. 이때 무장대는 동병 뒤쪽으로 습격했다. 당시 이곳에는 개울이 있었고, 그위에 성을 쌓 았었다. 무장대는 성을 넘어 동동네 일대를 습격했고, 김종원을 끌고 갔다. 그는 무장대와 40여 일을 함께 생활하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도주했고, 나중에 안내원으로 활동했다. 세 번째는 여자들이 초소를 지키고 있던 아웨낭목 북쪽을 통해 들어와 향사를 습격했다. 이날은 음력 1953년 10월 6일로 강정국민학교 운 동회날이었다. 무장대는 새벽 2시께 습격하여 향사에 주재하고 있던 경찰을 살해 하고 김경자를 붙잡아갔다. 그도 50여 일 후 도주해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서 4·3으로 첫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1948년 11월 16일이었다. 이날 강 석중과 김기석 2명은 철도경찰이 마을에 들어오자 해안가로 피신해 숨었다. 그러 나 이들은 곧 검거되고 강정리로 끌려가 당동산에서 강정 주민들과 함께 총살됐 다. 당시 학살 이유는, 중문지서 축성작업에 주민들이 동원되었는데 이에 참가하 지 않은 사람들을 경찰이 찾아내 총살한 것이라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다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학살사건이다. 1948년 12월 4일: 김성두(35, 남)가 중문지서에 연행됐다가 이날 중문지서 동쪽 밭에서 총살됨 1949년 1월 4일: 김두기(43, 남), 변두찬(21, 남), 송두홍(33, 남), 오성도(20, 남), 이문휴(27, 남), 이윤백(32, 남), 이용준(43, 남), 홍계훈(26, 남) 8 명은 이날 중문지서 소속 응원대에 연행돼 중문지서로 갔다가 오 후 5시께 천제연폭포 입구(중문리 도살장 옛터)에서 집단학살됨 9월 6일: 김천종(33, 남)은 9월 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금고 2년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 수감 중 행방불명됨 1950년 7월 29일: 김원준(30, 남)과 김태석(20, 남)이 한국전쟁 후 예비검속됐다 행방불명됨 월평리에서 현재까지 4·3희생자로 인정받은 주민은 모두 16명(남 1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