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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선생 고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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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요 친일 행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국방헌금 및 친일 단체에 거액 기부:최승희는 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 중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거액의 돈(수만 원 상당)을 일제의 국방헌금(군용기 헌납 대금 등)으로 기부했습니다.또한 조선문인협회 등 친일 성향의 문화 단체에도 지속적으로 기부금을 전달하며 일제의 전시 재정 조달에 협력했습니다. 2. 수많은 일본군 위문 공연 (황군위문공연):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선(중국 만주, 전방 지역 등)을 직접 찾아가 전선에서 싸우는 일본군(황군)을 위문하는 공연을 수십 차례 개최했습니다.그의 위문 공연은 일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침략 전쟁의 정당성을 문화적으로 프로파간다(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3. 친일 무용 작품 창작 및 수상: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친일 무용 작품인 〈무혼(舞魂)〉 등을 창작하여 무대에 올렸습니다.이러한 전시체제 협력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 당국으로부터 '국민총력문화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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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의 행보와 평가 본인의 해명: 해방 직후 귀국한 최승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의든 타의든 친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명하지 않겠다. 민족 앞에 지은 죄는 앞으로 '코리안 발레'를 창건하여 춤으로써 속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월북: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친일 행적에 대한 거센 비판과 함께 남편 안막의 정치적 성향 등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지자,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북하여 북한 무용계의 최고 권위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출처 : 나무위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