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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로 선정하여 그 보존방법까지 정리하는 방대한 사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두어 유적을 분류하고, 분류된 유적의 의미를 하나하나 정 리해가며 현장작업을 하는 힘든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와중에,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엉뚱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선은 유적의 명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였 다. 4·3성, 잃어버린 마을, 수장(水葬), 희생터냐 아니면 학살터냐 같은 요즘은 흔 히 쓰는 명칭도 당시에는 모두 논란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4·3성 문제에서, 당시 각 마을은 토벌대의 지시에 따라 마을마다 성을 쌓았다. 그런데 그 명칭을 성 앞에 마을 이름을 붙여 ○○성으로 할 경우 전통사 회에서 쌓았던 대규모의 성과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논의 끝에 4·3자를 붙여 ‘○○ 4·3성’으로 하자, 결정했다. 잃어버린 마을의 경우는 더 어려 웠다. 요즘 우리는 보통 잃어버린 마을을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 간 마을에서 초토화작전을 벌여 집들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한 마을 중 지금도 복구가 되지 않은 마을’로 정의한다.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를 보면 제주도 전역에 는 잃어버린 마을 122곳이 산재해 있다. 당시 한 자문위원이 그랬다. “아니 어떻 게 해서 이름이 잃어버린 마을이냐? 마을 주민들이 참혹하게 학살되고, 마을이 모 두 불타 없어졌는데 뭐, 누가 동전 하나 잃어버린 것처럼 취급을 하느냐?” 그럼, 한 단어로 적절한 이름을 만들어봐라! …. 더 이상 최고의 작명가는 나오지 않았 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은 지금도 그 이름이… 잃어버린 마을이다. 하나 더 예 를 들어보면, 수장(水葬) 표현이 있다. ‘시신을 물속에 넣어 장사 지낸다’는 의미의 수장이 어떻게 당시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먼 바다로 나가 학살해 던져버린 일’ 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논쟁 끝에 혹자가 그럼 수장학살로 표 현하면 어떤가, 제안했다. 가장 적절한 의견이었다. 마지막으로 희생터라는 용어 는 다른 문제로 논란거리가 됐다. 2003년 당시, 아무리 4·3특별법이 발효됐고 노 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해도 관가에서는 4·3을 아주 조심스레 접근했다. 학살이 라는 용어 쓰기를 거북해했다. 일하는 사람들 측에서 반론이 쏟아졌다. 아무리 그 래도 4·3 시기의 죽음이 어찌 그냥 죽음이며 희생에 불과한가? 당시 젊다는 것이 죄가 되고, 제주도 사람이라는 것이 낙인이 되어 무차별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 처 형되지 않았는가? 당시에는 희생터가 아니고 학살터라고 아무리 주장해 봐도 보 25 4·3유적의 조사·현황·보존 - 제주시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