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page
22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년 3월 8일 화북공립국민학교로 개편됐다. 4·3 시기 학교는 2,000평의 부지에 목조함석 건물 2동(각 4개 교실, 2개 교실 을 갖춤)과 목조기와 건물 1동(교실 및 교무실), 기와지붕 건물 1동(화장실)의 시 설을 갖추고 있었다. 6학년까지 8학급이 있었고, 학급당 학생수는 45명 정도였 다. 교실이 부족해 2부제 수업을 했다. 4·3 즈음 교사로는 교장 양원창, 교사 김기 주, 문태화, 이순자, 신정현, 김춘자, 강사 양○○ 등이 있었다. 학교는 1949년 1 월 8일 전소됐다. 1948년 4월 3일, 화북지서가 소실되자 경찰은 화북국민학교를 화북지서로 이 용했다. 그 후 주둔 경찰은 걸핏하면 학교 마당에 주민들을 불러모았고, 이곳에 모였던 주민들 중 다수가 고우니모루나 분계석, 도두리 등지로 끌려가 학살됐다. 1949년 1월 7일, 무장대가 습격해 지서로 쓰이던 교사(校舍)를 불태웠다. 그러 자 다음날인 1월 8일, 토벌대는 장용순 구장을 포함한 주민 7명을 보초를 잘못 섰 다는 명분으로 운동장에서 학살했다. 이날, 군인들은 같은 동네의 한청단원들에 게 이들을 창으로 찔러죽이라 명령했고, 주저하던 청년들도 보복이 두려워 창을 들 수밖에 없는 비극이 연출됐다. 그날 보초를 섰던 안명호는, “서청 출신 화북지 서 순경이 나를 다짜고짜 운동장에 무릎 꿇게 하고는 죽이려 했어. 그때 마침 군 인 트럭이 들어오면서 나이가 어린 나를 발로 차듯 내쫓아서 살아날 수 있었지”라 고 증언했다. 이날 희생자 8명은 김신호(18), 백낙순(81), 신수탁(65), 양치명 (24), 장용순(45), 허석행(26), 허술(51, 이명 허목욱), 허중행(22)이다. 그리고 며칠 지난 1월 12일, 이곳 학교 운동장에서 김의범(37)이 공개적으로 화북청년단원에게 창에 찔려죽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화북국민학교 정문 앞에는 일본식으로 지어진 10평 남짓한 화북소방대 건 물이 있었다. 또한 이곳 소방서 바로 동쪽 언덕에는 소방시설의 하나로 종대를 만 들어 종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이 종(후에 사이렌으로 바뀜)은 마을에 화재가 발 생하거나 비상시, 혹은 전 리민회의가 있을 때 타종돼 리민들을 불러모았다. 그때 이 종소리나 사이렌 소리는 삼양, 도련, 봉개, 거로 등지까지 울려퍼져 주민들을 긴장시켰다 한다. 1949년 1월 8일 정오께, 화북리에 요란스레 비상종이 울려퍼 지자 주민들은 하나둘 서둘러 운동장에 집결했다. 그러자 앞에서 얘기했듯이 전 날 보초를 섰던 8명이 지명됐고, 이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그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