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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제주읍 어. 구덩이를 파자마자 얼른 돌아가라고 했지. 나는 돌아가는 척하다가 옆 밭으로 들어가 숨고 담구멍으로 그 광경을 봤어” 하며, 그날을 아프게 기억했다. 그는 이 어, “그들은 버텨봤지만 군인들의 완력을 당할 수 없었지. 저기 봐. 지금 이 밭을 경작하지 않는 건 밭주인이 이곳에 유골이 묻혔음을 알기 때문이야. 당시 죽은 사 람들은 서촌(西村) 사람들이란 소문이 돌았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4·3진상조사보고서 6 를 보면 위 사건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들에 대한 사형 집행은 1949년 2월 27일 오후 2시 30분에 제주읍 화북리 부근에 서 이루어졌다. 관련 명령서는 다음과 같다. 육군본부 제2연대본부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호 ○ 1948년 12월 29일부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20호에 의거하여 아 래와 같이 죄수에 대한 사형집행을 명함 1. 사형집행할 죄수:김윤택 외 38명 (별지 첨부 명부와 같음) 2. 집행기일:단기 4282년 2월 27일 14시 30분 3. 집행장소:제주도 북제주군 제주읍 화북리 부근에서 집행 장교가 지정한 장소 4. 사형집행 장교:육군대위 조영구, 육군소위 정세진 5. 입회 장교:군의관 육군중위 박신범, 정보관 육군소위 박태원 6. 집행방법 및 기타 세부방식에 관하여 본 명령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군사형집 행의 기본방식 규정에 의함 단기 4282년 2월 22일 육군본부 제2연대 연대장 육군중령 함병선 (직인) 이곳은 조사 결과, 1948년 군법회의에서 사형에 처해진 39명을 총살 집행한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6) 제주4·3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