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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4·3연구소는 그 후 5월 12일까지 8일 동안을 밤낮없이 발굴에 매진했다. 유해는 삽질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야에 드러났다. 모두 3구였다. 유해 들은 같은 간격으로, 30cm 깊이로 묻혀 있었다. 학살 후 주민들이 수습해 매장 했다는 증거였다. 유류품도 발굴됐다. M-1 탄두, 단추, 가죽천, 발목대, 별모양 철 재품 등 총 18점이 확인됐다. 다. 현황 양치석 밭은 학살 당시나 지금이나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다르다면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다는 것뿐. 그리고 당시 매장장소인 화북천 인근은 학살 터와 화북천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3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발굴 전까 지 이곳 희생자 매장지는 흙만 약간 씌운 야트막한 무덤 형태였다. 이곳은 2007 년 화북천 정비공사로 파헤쳐지면서 소실됐다. 당시 3구의 유해 중 1구는 감식 결과 아라동 희생자 오기옥(19, 남)으로 밝혀졌다. ⑥ 가릿당동산 동녘밭(4·3희생자 유해발굴지) 가. 소재지 제주시 화북1동 나. 개요 이 밭은 1949년 2월 27일, 지난 해 군법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람들이 총살 집행된 장소로 추정되는 곳으로 주민들은 가릿당동산 동녘밭이라 부른다. 1949년 초, 화북지서 경찰은 마을에서 보초근무를 서던 한청단원들을 동원해 이곳에 구덩이를 파도록 명령했다. 수십 명이 동원돼 구덩이를 다 팔 즈음 군인 트럭에 실린 민간인들이 개인 소지품인 듯한 보따리를 들고 도착했다. 이들 민간 인은 구덩이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총살당할 것을 직감하고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총을 든 군인들에게는 불가항력이었다. 이들은 개처럼 끌려가 구덩이에 처박혔고, 곧 군인들의 총에서 불이 뿜어졌다. 이날 현장을 밭담 구멍으로 지켜본 안명호(2003년 73세, 남)는, “우리 청년들이 구덩이를 팔 때부터 상당히 서둘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