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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제주읍 “초가을 어느날 낮, 총소리가 요란했어. 리민들 전부 모이라 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운동장에 나오라고 했지. 어디론가 이동하더니 비석거리와 동제원 중간지점, 학교 서쪽 길에 전 리민들을 집합시켰어. 양치석의 밭이야. 곧 차에 실려온 민간인 5명 을 데리고 나와 50여 미터 전방에 일렬횡대로 세웠어. 검은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 어. 군인들, 사형수 한 명에 군인 3명을 30여 미터 간격으로 배치시키고, ‘이들은 공비 이니 사형에 처한다. 너희들도 공비가 되면 이럴 것이다’ 하고, 권총을 빼들고 사형수 1 명에게 권총을 쏘더니 사격 명령을 내렸어. 나중에 안 사실이야. 우리가 희생자들을 가 매장하려고 할 때 살아있던 한 사람이, ‘우리는 도두동 사람이다. 집 앞에서 놀다가 붙 들려 왔다’ 했다고, 해. 그리고 당시 화북지서에 순경으로 근무하는 도두사람도 서로 아 는 사이라고 했어.” 사건 후, 시신들 일부는 유족들이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히 몇 구 가 묻혔고, 몇 구를 찾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화북천변에는 4·3 시신 이 묻혀있다는 소문만 무성히 자라났다. 2006년 5월 4일. 4·3연구소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유해발굴을 실시했다. 제주도에서 4·3유해가 공식적으로 발굴되는 첫 순간이기도 했다. 화북천 정비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이어서 시간도 별로 없었다. 화북천 인근 유해발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