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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3.10학생독립만세운동의 전개과정 당진의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인 원용은은 1919년 고종의 국장에 참례하고 3.1 경성의 독립만세 운동을 목격한 후 귀가해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했다. 그는 동급생인 박창신과 협의하고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제작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또한 원규상에게 의뢰해 강선필 에게 '독립운동의 노래'를 받아 등사판으로 인쇄했다. 한편 박창신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당진 보통학교와 덕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연합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면천읍성 동문 밖 소나무 숲에 집결한 면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 130여 명은 독립만세를 외쳤다. 원용은과 박창신의 주도 하에 태극기와 깃발을 선두로 이종원과 박성은이 학생들을 이끌고 학교 정문 앞을 거쳐 면천경찰관 주재소로 이동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부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하기도 하였지만 일경들의 제지에 학교 교사들이 무력 탄압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와 희생을 막기 위해 그만둘 것을 호소하여 결국 학생들은 해산했다. 주도 학생인 원용은과 박창신은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주재소에 자진 출두해 체포를 당했다. 이들은 3월 27일 동급생이 졸업했지만 공주 감옥에 수감되어 졸업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적도 말소당했다. 그리고 3월 31일 공주검사국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당시의 기록은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신문보도 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