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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가 터지자 공산주의자들은 지도 세력을 무차별 감금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의 피란 권고에도 임장로는 머리를 고개를 저으며 " 양들을 버리고 장로가 저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라고요? 저는 못합니다. 아니 합니다"하고 거절했다. 결국 임장로는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당하여 모진 매질을 당하던 중 부상병들이 몰려오자 공산군은 그에게 치료를 부탁했지만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 의술을 베풀수 없다고 하여 거부하자 국민학교 교사인 그의 맏아들 정순씨를 아버지 앞에서 고문하여 후유증으로 6개월 만에 죽게 했다. 1950년 8월 8일 해제국민학교 교정에서 임장로를 비롯한 양매교회(해제중앙교회) 전도사 집사 등 네 사람을 인민재판으로 총살했다.